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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의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해 생활했다. 1864년 본 대학에 입학해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배우다, 스승인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공부했다. 1870년 독불 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했으나 병에 걸려 제대했고, 그 후 니체는 평생 병에 시달리는 병약한 몸이 되었다. 니체는 작곡가인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는데, 특히 바그너가 작곡한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테>를 듣고 처녀작인 <비극 (悲劇)의 탄생> (1872)을 쓰게 되었다.

    니체의 실존주의 차라투스트라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 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의 두 가지 원리로 그리스 비극을 독창적으로 해석했다. 또 그 정신을 현대에서 되살린 것이 바그너의 음악이라고 서술하는 등 바그너의 신예술 운동을 지원했다. 이어서 발행된 <반 (反) 시대적 고찰>(1873~76) 4편을 통해 독불 전쟁의 승리에 도취하여 있는 독일 국민과 문화를 통렬하게 비난했고, 유럽 문화에 대해 회의를 드러냄과 동시에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天才)를 문화의 이상으로 꼽기도 했다.

    병세가 악화한 니체는 1879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에서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한 투병 중에도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80), <서광>(1881), <기쁜 지혜>(1882) 등의 저술을 남겼다. 또 니체는 1883~85년에 걸쳐 알프스 산중에서 깨달은 '영원 회귀' 사상을 바탕으로 한 '초인(超人)'의 이상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91)를 썼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니체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모두 표현되고 있으나, 니체는 자신의 사상을 더 구체적으로 해설한 <선악(善惡)의 피안>(1886)을 저술했다.

    그 후 유럽의 윤리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도덕계보>(1887)가 출판되었고, <권력에의 의지>는 미처 완성이 되지 않아 니체가 사망한 후에 출판되었다. 18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 <우상(偶像)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안티 그리스도>, <니체와 바그너> 등이 저술되었는데, 그중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니체는 1889년 정신 착란 증세에 빠졌고, 1900년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동생의 간호를 받았다.

    니체의 사상은 빼어난 문장과 함께 주로 문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오늘날 실존주의들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
    바그너는 독일 낭만파를 대표하는 가극 작곡가로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과 철학을 공부했다. 아홉살 되던 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열아홉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는데 베토벤, 베버 등의 영향을 받아 음악 ·시가 ·연극을 종합한 장대한 악극을 많이 썼다. 작품으로 평론<오페라와 드라마>, 오페라<방황하는 네덜란다 인>,<탄호이저>,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등이 있다.

     

    실존주의 (Existentialism)
    실존주의는 20세기 초반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발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사상이다.
    '실존' 이란 말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를 강조하는 철학 용어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게는 실존이란 용어가 인간의 존재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일반적 본질보다도 개개 인간의 실존, 특히 타자와 대치할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향의 선구자로서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나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를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헤겔이 주장한 보편적 정신의 존재를 부정했는데, 키르케고르는 인간 정신을 개별적인 것으로 보아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임을 주장했고, 포이어바흐는 인류란 개별적인 개개인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주장했다. 두 사람의 이와 같은 주장은 실존주의 사상의 핵심이 되었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초월자 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보다 선행하면,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자유로운 입장에서 스스로 존재 방식을 선택하게끔 운명 지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다만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본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인간 개인의 자각적인 생활 방식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닌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로는 이 밖에도 셰스토프, 베르자예프, 부버를 들 수 있고, 문학자로는 사르트르 이외의 카뮈, 카프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실존주의의 시조로서는 니체나 도스토옙스키, 나아가 파스칼까지 거론되기도 한다. 또한 바라트나 불트만 등의 변증법 신학자는 실존주의 신학자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의 공통점은 개인의 실존을 중시한다는 점일 뿐, 그 사상의 내용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니체의 디오니소스형과 아폴론형

    '디오니소스형' 과 '아폴론형' 은 그리스 신화의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의 도취적 ·창조적 충동과 태양신인 아폴론의 형식, 질서에 대한 충동을 대비한 용어이다.  <비극의 탄생> 에서 니체는 그리스 조각의 사물을 관조하는 분위기를 아폴론형, 음악의 격정적인 약동을 디오니소스형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것이 가상(假象) 속에 형태화, 개체화되는 조형 예술의 원리로써의 아폴론적인 것이, 개체를 도취로써 영원한 삶 속에 해체하는 음악 예술의 원리로써의 디오니소스형인 것과 결합하여 그리스 비극이 탄생한다. 

     비극은 일단 낙천적이고 이론적인 소크라테스주의 때문에 멸망했지만, 바그너의 악극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니체는 생각했다. 니체는 나중에 이런 대립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영원히 창조하고 파괴하는 생(生)의 긍정이라는 그이 철학의 핵심을 디오니소스형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리스예술의 발전에서 시작된 니체의 이 개념은 훗날 예술 체계 구분의 원리, 역사 원리, 예술 제작의 전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