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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국가에 대한 견해

    그렇다면 과연 가장 이상적인 생활방식을 위해 가장 좋은 형태를 가진 정치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그는 먼저 다른 형태의 정부들을 세 가지 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째는, 모든 국민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는가? 둘째,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가? 셋째, 어떤 것은 공유하고 어떤 것은 공유하지 않는가? 그의 생각으로는, 두 번째 경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만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선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이상적인 정부에서 보면 '가능한 최대한의 일치성이 있는 국가가 가장 좋다.'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의 극단적인 획일화는 좋지 않다고도 했다. 

    국가는 여러 종류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서로 보완하여 더 높은 삶의 질을 이루어 나아간다. 만약 국가가 하나의 동질적 단위로 된다면 그것은 국가라기보다는 가정이며, 나아가 가정이라기보다는 개인과 같아져서 결국 국가가 파괴된다고 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를 놓고 한결같이 '내 것이다.'라고 한다면 무관심과 소홀함의 문제가 생긴다. 한 아이를 여러 사람이 돌본다고 가정하면, 나중에는 서로가 돌보라고 미루게 되는 일이 생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물에는 별로 흥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혈족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게 되어 패륜적인 폭행이나 아버지와 자식의 부자연스러운 사랑이 있을 수도 있고, 살인과 같은 악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인척관계가 주는 도덕적인 양심으로 인해 마땅히 두려워야 할 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재산의 경우에는 어떤 의미로는 공유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것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재산을 고유하게 되면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모든 것을 공유할 때에는 관대하고 너그럽게 재산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일부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면 그 문제는 사라진다. 국민들은 재물에 대해 관대해져서 분쟁이 줄고 각자 자기의 소유물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게 되어 소득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재물에 대한 관대함은 자신의 재물이라고 여겨지는 것에서 얻어지는 자연적인 쾌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분쟁이 많은 재산 문제를 알맞게 규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칼케돈의 팔레아스를 들 수 있다. 그는 처음으로 시민들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해 재산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시민이 똑같은 양의 재산(즉 토지)을 소유하도록 했다. <법률>에서 스승인 플라톤은 사람이 절제하면 살 수 있는 충분한 정도라야 하고 그 이상은 제한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여기서 '절제하면 살 수 있다.' 말의 의미는 모자람의 의미가 될 수도 있기에, '절제하면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재산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더 적절한 정의가 된다. 또한 재산의 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한 법도 있다. 그 예로 로크리아인들의 경우에는  '재난이 닥쳤기 때문에 재산을 팡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들은 재산을 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들이 모두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소유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부터 평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법으로 충분히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산의 불평등은 대중을 혁명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재산뿐만 아니라 관직과 명예의 불평등도 범죄난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한편, 관직이 평등하면 지식인들은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않게 되고 관직의 평등은 지식인들을 혁명적으로 만든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불만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과 관직의 분재는 서로 반대로 생각해야만 한다. 스파르타의 정치 질서의 문제점은 반란을 일으킨 농노들과 동맹관계에 있었으며 그들을 너그럽게 다루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정치질서에서는 부의 숭배가 불가피하게 일어나게 되어 재산의 불평등을 일으킨다.

    스파르타가 재산배분을 평등하게 유지해서 시민의 수를 늘려나갔다면 인력이 모자라서 단 한 번의 패전으로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파르타의 정치조직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는 있다. 감독자들은 최고의 권위를 누렸지만 이들은 평민 출신이었다. 평민출신은 생활 수단이 없어서 매수되기가 쉬웠다. 이는 부패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원로원 또한 뇌물이나 인간관계의 영향을 받아 공적인 일을 처리하곤 했다. 의원을 뽑는 방식 또한 공개적으로 선출하는 방식이었는데 명예나 관직에 대해 야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크레타의 정치질서는 스파르타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비판을 받았다. 이에 반해 카르타고의 정치질서는 일반적으로 좋은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스파르타의 정치 질서와 비슷한 점은 있지만 카르타고의 정치 질서는 독특하면서 좋은 점들이 있다. 그 증거로 카르타고는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같은 정치체제를 견고하게 지켰다. 이렇다 할 내분도 없었고 누군가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카르타고의 독특한 점은 귀족 정치 또는 혼합정치의 원칙을 기반에 두고 때로는 민주 정치의 방향으로, 때로는 과두정치의 방향으로 가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관리 선출을 공적에 따라 선출하며 왕은 당시의 뛰어난 가문 출신으로서 선임제가 아닌 선거로 뽑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좋은 정치 제체를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