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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톤> 편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은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탈출을 권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3장에는 소크라테스가 자기 죽음을 앞두고 오히려 밝은 분위기로 자신의 넓은 세계관과 사회적 관계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살리려고 사형집행 직전까지 계속 찾아왔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이 한 달 전에 확정이 되었는데 델로스로 배가 떠나면 돌아올 때까지는 사형을 금하게 되어 있었다.

    델로스난 섬은 아폴로 신의 고향으로 아테네 사람들은 신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현하기 위해 배를 띄우는데 이 때문에 사형을 금지했다.

    크리톤은 능력가의 부자라서 거의 못 하는 것이 없어 교도소도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 크리톤과 친구들은 끝까지 탈출을 권유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탈출을 도운 친구들이 밀고자들에게 고발될 것을 우려했다.  또한 탈출하려면 사람을 매수해야 하는 비용도 많이 들게 되고 만약 밀고를 당해 잡혀가면 재산을 몰수 당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탈출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다수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아니토스 파와 다수의 협박에 굴복해서 탈출한다면 세상 사람이 비판할 것을 우려했고 사람들은 다수가 내세우는 주장을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수가 중요하지만, 그 다수가 무지한 사람이라면 그 주장을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의인과 백 명의 무지한 자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그는 한 사람을 택하겠다고, 다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강한 주장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혼자 탈출할 경우 남은 가족들을 두고 갈 수도 없고 다 같이 탈출해도 죄인이라는 이유로 힘겹게 살 것을 우려했다. 의로운 삶을 살다가 목숨을 잃는 것과 죄인으로 살아남는 것의 차이점이다.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로 남고 싶어 했다.
    친구들이 소크라테스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가지고 아테네로 입국하기도 했다. 실제로 심미아스, 케베스 등이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를 살리고자 많은 돈을 기부했다. 크리톤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절친한 친구와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세번의 전쟁과 이스트모스에 가 본 일을 빼면  아테네를 떠나본 적이 없으며, 아테네를 그의 국가로 인정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스트모스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지역을 말하는데, 바다의 신이라고 불리던 포세이돈을 위한 대축제가 열렸던 곳이다.

    소크라테스의 국가관이 확립되었다. 그는 아테네에 거주함과 동시에 자동으로 아테네의 법을 지키는 시민이 된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시민의 의무, 교우 관계, 전쟁 시 참전의 의무 등, 현대 사회에서도 요구되는 민주 시민의 자격과 의무를 수천 년 전에 이미 강조했다. 그는 이미 아테네라는 국가로부터 교육과 양육, 그리고 치안에 대한 거의 모든 특혜를 받았고, 설사 죽음이 악인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법을 버릴 수는 없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죄를 지으면서까지 타국에 가면 그 나라의 질서마저 망가뜨리게 된다고 믿었다. 심지어 사형선고 직전에도 재판장들이 추방해 줄 테니 다른 나라에 가서 살라고 했다.  

    아테네는 민주 도시였던 만큼 자신이 아테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대로 재산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진정한 도덕이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정당하고 올바름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덕과 정의, 교훈, 법률 그 모든 것을 생각하여 떠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자들과의 마지막 대화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사이의 마지막 대화 내용을 파이돈이 에카테리우스에게 전해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파이돈과 제자들 소크라테스의 친구들까지 모두 일고 여덟 명이 끝까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필룰라오스의 제자들인 케베스와 심미아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신이 과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원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쾌락의 반대말은 고통이다.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모두 가지고 있다.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라는 이야기한다. 그것은 둘 다 함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떼어놓는 방법은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분리되면 가능하다. 철학자는 원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철학자들은 올바르고 새로운 진실을 주장하기 때문에 반대파로부터 공격당하기 쉽다. 그래서 언제 죽임을 당할 지 모르니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두려움이 자신의 영혼을 점령하면 잘못된 진실에 맞설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도 이와 같다고 믿었고 용기의 필요성을 이때 제기했다.

    당시 아테네에서 죄인에게 사용하는 약물은 열이 오르거나 흥분하면 효험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자살에 대한 생각도 질문했다. 사람의 육신은 영혼을 가둬두는 감옥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이란 신의 시험을 거치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절제하는 것은 철학자의 의무이자 인간의 의무이다. 선과 악은 분명히 사람이 육체를 떠날 때 많은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절제하기 위해서 신으로부터 지혜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완벽할 순 없겠지만 지혜로써 고통과 쾌락 두 가지를 모두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혜는 쾌락이 가져오는 고통을 잘 알고 있다. 반대로 고통이 오면 쾌락이 온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서 사치와 쾌락을 위해 많은 돈만 추구한다면 과연 원만한 사회가 만들어지겠는가? 자연히 인심도 없고 사람이 살기에 험악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사람은 당연히 이를 예상하고 막으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지혜이다. 한마디로 일반인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조차 약간의 지혜로 자기 절제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절제와 진정한 철학자의 생각에는 다른점이 있다. 그들은 또 다른 쾌락을 지키기 위해서 약간의 절제를 한다. 사람들 앞에서 겉만 멀쩡한 척하는 사람들, 정치인이나 부자들 중에 이런자들이 많다.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소유물에 대해서 유난히 욕심이 많은 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앞에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뒤에서 몰래 뇌물을 받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지혜로써 절제하면 영혼이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보장은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항상 사후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