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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 모든 것들이 조화되어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특히 무엇보다 먼저 젊은이의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정치 제제를 해롭게 한다. 이미 성장하여 시민이 된 사람들보다 앞으로 시민이 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 또한 도시 전체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교육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행해져야 한다. 즉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교육을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시킬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공공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교육은 누구에게나 모두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보통 읽기, 체육 훈련, 음악 거기에 때때로 부가되는 제도와 법이다. 육체적인 욕구는 영혼의 기능들보다 일찍 발달하기 때문에 교육은 육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육체는 영혼을 위해 훈련되어야 하며, 욕구는 이성을 위해 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모든 교육이 시민들에게 골고루 이루어진다면 분명 우리 정치체제는 이상 국가를 향후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밑거름이 된다. 

    <정치학>에 나오는 일부 내용들은 그가 지닌 한계성을 드러낸다.

    앞의 내용에서 보았던 천성적 노예론이나 남녀 불평등 같은 내용은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오래된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러 가지 정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러 가지 정치 체제에 관한 그의 견해는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혁명에 대해서나, 자유와 평등에 관해서도 지금 우리 시대의 이론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놀랍다. 그만큼 그의 연구는 현실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우리 시대에 맍게 좋은 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글은 충분히 큰 영향력이 있다고 본다. 특히 국가를 정의하는 데 있어, 다양한 부분이 서로 협력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체라고 본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란 다양한 부분이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일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파악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나'라는 존재는 나라와 정치에 있어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정치학>을 통해 국가의 한 부분으로서의 나, 그리고 우리,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정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아테네 민주주의 & 현대의 민주주의

    아테네 민주주의 - 사람들은 보통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을 아테네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혁명에 커다란 영향을 기친 루소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에 열광했고,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확립한 사람들도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아테네의 민주정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결코 아니었다. 아테네 민주정은 기원전 750년과 450년 사이 소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지배가 더 좋다는 생각에 아테네 인들이 참주를 몰아내고 귀족정치 체제 대신에 만들어 발전시켜 나간 정치 형태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최종 정점은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BC 495~429)에 의해 5세기 후반에 이루어졌다. 페리클레스는 민주적 개혁 조치를 취했는데 배심원 제도, 500인 평의회 제도, 추첨으로 임명한 공직자에게 국가 수입으로 공무수당을 제공하는 법안 등을 통과시킨 업적을 남겼다. 이로 따라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민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었고 도시의 중요한 사안들은 민회에서 결정되었다. 당시 10명의 행정 책임자들은 정치를 잘 못 하면 민회에 의해 쫓겨나거나 사형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에 의해 생긴 공무수당 지급 제도는 가난한 시민들도 공공의 정치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었다, 즉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교대로 대부분의 사람이 관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이렇듯 모든 시민이 함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테네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았다. 우선 거주 외국인, 노예, 여성을 정치참여에서 제외한 점, 대중들에게 절대 권력을 주어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처럼 절대 권력의 부패를 불러온 점,라는 민족과 나라에 대한 지나친 우월의식 등은 오점으로 남아있다. 또 한 실제로 정치는 민중이 아니라 여전히 부유한 귀족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보인다. 이후 기원전 5세기 말 결국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일부 선동가들에 의해 매우 혼란스러워졌는데, 기원전 4세기의 인물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테네의 민주정치를 별로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이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대의 민주주의 -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말은 '국민'을 뜻하는 그리스어 '데모스'(Demos)와 '지배'를 뜻하는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 '국민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보통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 당시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와 같다고 할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일시적인 등장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리스 도시국가 붕괴 이후 민주주의는 근대 입헌주의의 탄생까지 무려 2,000여 년의 공백 기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현대의 자유민주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는 할 수 없다. 현대의 민주주의를 완성한 민주주의 사상은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 이후 잠들었다가 17세기 후반부터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여 18세기에 부활하였다. 그 시대의 로크, 몽테스키외, 루소 등이 주장한 민주주의 사상은 미국의 독립과 헌법 제정, 그리고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끼쳤다. 1776년의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천부인권설과 함께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모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혁명은 계몽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평등의 개념과 주권재민 사상, 그리고 모든 국민의 정치과정 참여의식을 전 유럽에 널리 퍼뜨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1787년 미국의 헌법은 인류 최초로 삼권 분립을 명시하고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성문화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근대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단계적으로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