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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로스대왕 (Alexandros the Great)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BC382~BC336)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왕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으면 알렉산더 대왕 또는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 불린다. 그리스의 작가플루타르코스는 "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 또는 "필리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로 그의 탄생에 대해 전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어린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대학자로 유명했고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들의 스승으로 초빙하였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에서 3년 동안 알렉산드로스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다. 그가 호메로스의 시를 애독하며 원정 때도 그 책을 지지고 다녔고, 학자를 대동하여 각 지방의 탐험이나 측량 등을 시킨 일, 또는 변함없이 그리스 문화를 숭앙한 태도 등은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로부터 전술, 행정등의 실질적인 일을 배운 그는 18세의 나이에 카이로 네이야 전투에 직접 참가하였다. 후에 부왕이 암살되자 군부의 추대를 받아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되었고, 그리스 도시의 대표자 회의에서 헬라스 연맹의 맹주로 뽑혔다. 왕위에 오른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계획했던 페르시아 정복의 임무를 물려받았다. 그는 마케도니아군과 헬라스 연맹군을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자기가 정복한 당에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 지은 도시를 70개나 건설하였는데 이는 헬레니즘 문화 형성의 구심점이 되었다. 바빌론에 돌아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소크라테스(Socrates)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3대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뚱뚱한 데다가 키도 작고 눈은 튀어나왔으며 들창코에 입은 커서 매우 기이한 외모를 가진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친구들은 그를 당대에 가장 곧은 사람이라고 평했고, 플라톤이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연상의 '친구'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소크라테스는 내면적으로 매우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스스로 사람들에게 무지를 깨닫게 하고 영혼의 선(善)을 위한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도덕적 가치가 침식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혼란기에 살면서도 아테네 사람들의 심성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이 당시 그가 말했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명언으로 남아있다. 후일 그는 '불경죄'로 재판받게 되었는데, 망명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 남아 배심원이 500명이나 되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길을 택했다. 이 재판 과정에 관한 것은 플라톤의 <변명>이라는 책의 내용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행위와 활동에 대한 변호를 훌륭하게 해냈다. 그러나 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이에 친구와 제자들이 탈출계획을 세웠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았다. 이 죽음에 대해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큰 죄를 저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플라톤(Platon)

    (BC 428?~BC 347?)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플라톤은 영원불변의 개념인 이데아(idea)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밝히고자 했으며, 필로소피아(philosophia, 愛知,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철학)를 탐구했다. BC387년경에는 아테네의 근교에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의 교육과 연구에 전념했다.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등에 걸쳐 광범위하고 심오한 철학 체계를 세운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성주의적 윤리학이다. 그는 윤리적 동기를 바탕으로 사상을 전개했으며, 이성이 인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따라야 한다는 이성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 생전에 간행된 거의 30편에 이르는 저서는 1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일종의 희곡 작품이다. 여러 가지 논제(論題)를 둘러싸고 철학적인 논의가 오간 것이어서 '대화편(對話篇)'이라 불리며, 연대에 따라 전기 대화편, 중기 대화편, 후기 대화편으로 나누어진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만이 진정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전기에서 중기에 걸친 대화편의 대부분에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한 소크라테스 속에 구현(具現)되는 '철학자'를 변호, 찬양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주요 저서로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장면은 적은 <소크라테스의 변명>, 죽음에 직면한 철학자의 태도를 묘사한 <파이돈>을 비롯하여 <향연>과 <국가론>등이 있다. 또한 철학자가 통치하는 이상 국가의 사상을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플라톤의 상기설 

     

    플라톤의 진리 인식에 대한 학설로써, 진리의 인식이란 영혼이 신체와 결합하기 이전에 직관했던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에 지자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플라톤은 신화를 통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레테(망각)의 강 저편(천상계)에 있을 때 진리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의 혼이 강물을 떠 마심으로써 강이편(지상계)으로 와서 진리를 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에 대한 인식은 잊어버린 진리를 다시 기억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것이 이른바 플라톤이 주장한 상기설로, 진리에 대해 간파할 수 있는 능력, 즉 지성을 지닌 인간들이 그 지성의 직관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견해가 함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