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계급의 규모는 가능하다면 다른 계급을 합한 것보다 더 강할 정도로 크거나, 적어도 두 계급 중 어느 하나보다는 더 강할 정도로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 어느 한쪽에 중산층 계급이 가세하면 힘의 균형을 잃게 될 것이고 서로 적대하는 두 극단 중의 어느 하나가 지배적으로 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알맞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국가로서는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로 보았다. 만약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상대적으로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민주주의가 단순한 과두정치로 변질되거나 이에 대한 반발로 참주정치가 생겨날 수 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산층 계급이 높을 경우에는 시민들 사이의 ..
●시민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국가 또는 국가라는 것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시민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논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본질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시민이란, '관직과 법정의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즉, 임기가 일정하지 않는 관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시민을 '어버이가 모두 시민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어버이 가운데 어느 한쪽만 시민인 자는 시민이 아닌 것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국가를 처음 만든 사람이나 그 국가에 처음으로 살았던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부당한 절차로 시민이 된 사..
이상국가에 대한 견해 그렇다면 과연 가장 이상적인 생활방식을 위해 가장 좋은 형태를 가진 정치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그는 먼저 다른 형태의 정부들을 세 가지 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첫째는, 모든 국민이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는가? 둘째,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가? 셋째, 어떤 것은 공유하고 어떤 것은 공유하지 않는가? 그의 생각으로는, 두 번째 경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만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우선 플라톤의 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이상적인 정부에서 보면 '가능한 최대한의 일치성이 있는 국가가 가장 좋다.'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의 극단적인 획일화는 좋지 않다고도 했다. 국가는 여러 종류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서..
가족과 국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는 사실을 짐작해야 한다. 가족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국가는 하나의 생활 공동체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공동체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어 다른 공동체 모두를 포괄하는 특정한 공동체가 있다면 이는 가장 좋은 목적을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른 학문 분야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국가를 연구하기 위해서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분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기본이 되는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는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이성의 결합이다. 즉 후세의 종족을 번식하기 위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뜻한다. 둘째로는 함께 존속하기 위한 자연적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결합이다. 가족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되풀이되는 필수품 보급..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학파를 만들고 사람들을 가르치며 생물학에 대해 연구했다. 식물과 동물의 생활을 연구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함께 생각했다. 그의 나이 42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기 위해 펠라로 갔다. 필리포스 2세 (마케도니아의 제18대 왕 BC 359~336 재위)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가 대제국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필리포스 2세는 그에게 아들을 훌륭한 군사지도자로 키워달라고 부탁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철학 공부를 통해 용기 있는 큰 인물로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 BC 336~323재위)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마케도니아 군사력을 인도까지 진출..
현실적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내용 중간마다 다양한 정치 체제 이론을 비판하며 좀 더 나은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지침을 논하려고 애썼다. 그는 이를 위해 자신의 스승인 플라톤의 에 나오는 ,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내용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플라톤은 "정치는 정의를 실현 시키는 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받아들였고, 이상적인 국가를 꿈꾸었다. 반면에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서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를 부정하고 현실적인 국가의 모습을 연구, 제시하며 정치에 대해 연구했다. 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인 동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유일하게 이성을 지닌 동물이다." 이 말은 그 당시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간을 정의하는 표현으로 자주 인용되..
아리스토텔레스 [ Aristoteles ](BC 384년 ~ BC 322년) BC384년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아테네에 진출, 플라톤의 학원에 들어가, 스승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BC 335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에서 직접 학원을 열었다. 지금 남아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강의 노트이다. 스승 플라톤이 초감각적인 이데아의 세계를 존중한 것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까운 자연물을 존중하고 이를 지배하는 원인들의 인식을 구하는 현실주의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플라톤의 철학적 범주 안에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철학과 과학의 체계는 여러 세기 동안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바그너의 는 켈트 족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유명한 사랑 이야기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남녀가 주인공이다. 이 사랑 이야기는 12세기에 프랑스에서 이야기로 엮어졌는데, 사랑과 죽음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유럽 곳곳에 널리 퍼져 서구 연애 문학의 전형이 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로누아의 왕자인 트리스탄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버지를 잃었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어머니를 잃었다. 콘월의 왕으로 있던 큰아버지인 마르크 밑에서 지혜와 용기를 갖춘 기사로 자란 트리스탄은 아일랜드의 거인 몰오르트를 쓰러뜨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업적을 세웠다. 이후 아일랜드에 가서 용을 물리치고, 마르크의 아내가 될 아름다운 처녀 이졸데를 데리고 돌아오던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의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해 생활했다. 1864년 본 대학에 입학해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배우다, 스승인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공부했다. 1870년 독불 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했으나 병에 걸려 제대했고, 그 후 니체는 평생 병에 시달리는 병약한 몸이 되었다. 니체는 작곡가인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는데, 특히 바그너가 작곡한 비극 를 듣고 처녀작인 (1872)을 쓰게 되었다. 은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 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과 '..